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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최보식이 만난 사람] '우리 꽃 사진 달력' 제작 20년… 야생화 사진 元祖 김정명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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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산뜨락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5건 조회 3,182회 작성일 13-10-28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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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식이 만난 사람] '우리 꽃 사진 달력' 제작 20년… 야생화 사진 元祖 김정명씨
최보식 선임기자
입력 : 2013.10.28 03:02

"젊은 시절 카메라 안고 죽겠단 생각…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진은 공개 안 해"

"암자의 할머니에게 전화 걸어 '복수초가 피었습니까?' 물으면
'하늘에서 눈밭에 금화 던져 놓았네' 오후 3시쯤 다시 전화 걸면…"

보라색의 가을꽃은 꿀샘이 선명
'생식할 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 빨리 여기로 오라'는 절박한 신호
受粉 전후로 꽃 색깔이 바뀌기도

한국의 야생화 달력 사진
"20년간 판형과 글자체, 디자인이 전혀 안 바뀐 '골동품'이다. 이번 표지는 토종 동백꽃이다. 꽃부리가 안으로 오그라져 있다. 이게 활짝 다 핀 모습이다. 일 년에 수백 개 새로운 동백 품종이 나오지만 이런 형태는 못 만들어낸다."

2014년 '김정명의 우리 꽃 사진' 달력이 나왔다. 제20집 특별판이다. 20년간 해마다 이 달력을 만들어왔다는 뜻이다. 
김정명(68)씨는 요즘 유행하는 '야생화 사진 촬영'의 원조(元祖)답게 말했다.

"달력을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내가 찍은 꽃 사진을 보려는 것이다. 이 달력은 서점에도 없다. 하지만 고정적으로 1만5000부쯤 팔린다(정가 1만1000원·02-765-3520). 이게 없었으면 사진작가로서 굶어 죽을 뻔했다."

―꽃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데, 꽃을 아름답게 찍는 것이 무슨 특별한 기술이겠나?

"이게 얼음 위의 '복수초'다. 어린싹이 곡괭이도 안 들어가는 언 땅을 뚫고 올라오고 있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았고 주위의 눈결이 그대로 살아있다. 내 머릿속에 이 장면을 꿈꾸고, 때를 기다리는 것도 기술이다."
―극적인 장면은 어떻게 포착하나?

"오전 11시쯤 오대산 북대의 한 암자에서 밥해주는 할머니에게 '복수초가 피었습니까?' 전화를 걸면 '하늘에서 눈밭에 금화를 던져놓았네'라고 한다. 오후 3시쯤 다시 전화를 걸면 '하늘에서 금화를 싹 거둬갔어'라고 한다. 벌·나비가 활동하는 낮에는 피었다가 추워지는 오후가 되면 꽃잎을 오므리는 것이다. 이런 생리를 알아야 한다."
김정명씨는 “나는 언제 어디서 그 꽃 사진을 찍었는지 정확하게 기억한다”고 말했다
김정명씨는 “나는 언제 어디서 그 꽃 사진을 찍었는지 정확하게 기억한다”고 말했다. /이명원 기자
―사진을 보면 어린싹 주위로만 얼음이 녹아있다. 촬영을 위해 그렇게 했나?

"당시 바깥 온도는 영하 2도였다. 하지만 꽃술 안에 온도계를 꽂아보니 영상 12도였다. 자기 몸으로 주위 얼음을 녹인 것이다. 생명의 신비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어떤 사진가들은 인위적인 연출도 하는 걸로 알고 있다.

"백두산에 갔을 때 동료 사진작가가 망원 카메라로 사흘간 내 뒤를 쫓았다. 혹시 내가 꽃을 만지는지를."
―혼자만 있다면 그런 유혹도 생길 텐데.

"영국 런던의 자연사박물관에서는 내 꽃 사진 슬라이드를 판매하고 있다. 계약할 때 박물관 담당자가 필름을 일별한 뒤 '이 사진은 사람이 키운 꽃' '이 사진은 야생으로 핀 꽃'이라며 분류했다. 꽃을 건드린 사진이라면 전문가 눈에는 표시가 난다. 내가 원하는 사진을 찍으려면 그 모습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꽃과 인연(因緣)이 있어야 한다."

―꽃은 원래 그 자리에 있는데, 무슨 인연인가?

"꽃 군락 속에서도 '나 찍어줘요'하며 부르는 꽃은 따로 있다. 꽃을 찍으러 갈 때 마음이 정갈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소리를 듣지 못한다."
얼음 위의 ‘복수초’(사진 왼쪽), 한라산에서 촬영한 ‘구절초’ 사진
얼음 위의 ‘복수초’(사진 왼쪽), 한라산에서 촬영한 ‘구절초’.
―동화가 아니고서야, 꽃이 어떻게 부를 수 있겠나?

"어느 날 강원도 정선으로 차를 타고 가는데 동강 절벽에 작은 꽃이 보였다. 이는 꽃이 우리를 부른 게 아니고 무엇이겠나. 차를 세우고 올라가보니, 보통 할미꽃은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이 절벽의 할미꽃은 고개를 들고 있었다."

―고개를 들고 있는 할미꽃이라고 했나?

"이 사진을 1998년 꽃 달력에 올리고 '학자들이 연구해야 할 과제'라고 써놓았다. 이게 세계 유일종인 '동강할미꽃'이다. 그 동네 노인이 '우리 눈에는 그냥 꽃이었는데 선생 눈에만 왜 특별하게 보였나?'하고 물었다. 다음 해부터 이 꽃을 찍으러 인파가 몰렸고, '동강할미꽃 축제'가 생겨났다. 그 공로로 나는 '정선 명예 군민'이 됐다."

―지금 '동강할미꽃'은 어떤 상태인가?

"바위틈에 자생해서 군락이 늘어나지 않는다. 씨를 받아 땅에 심으면 30~50cm쯤 자란다. 향과 아름다움에서 절벽에 핀 꽃과는 비교되지 않는다."
―같은 종자인데 왜 그럴까?

"절벽의 꽃들은 절박하다. 벌·나비를 불러들여야 하니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꽃을 피운다. 종족 보존을 위해 생사를 거는 것이다."
세계 유일종인 ‘동강할미꽃’ 사진
세계 유일종인 ‘동강할미꽃’.
―꽃을 안 피우는 경우도 있는가?

"따뜻한 실내에서 물과 거름을 잘 주면 난(蘭)은 꽃을 안 피운다. 굳이 꽃을 피울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런 난을 영하 2~3도가 되는 겨울날 바깥에 사나흘 내놓으면 꽃을 피운다. 겨울이 없으면 꽃도 없다."

―겨울이 없으면 꽃이 없는 게 아니라, 겨울에 꽃이 없는 것이 아닌가?

"겨울에도 가지에는 꽃눈이 달려있다. 사람이 겨울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꽃눈을 잘라 보면 여섯 벌 내지 일곱 벌을 입고 있다. 그 속에 꽃잎, 암·수술, 씨방이 다 준비돼있다. 봄꽃은 봄을 맞아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그 전해 여름과 가을에 이미 꽃을 만들어놓고 겨울을 날 뿐이다. "

―가을꽃에 대해 얘기하자. 산야를 다녀보면 가을꽃은 보라색 계통이 많은 것 같다.

"곤충 눈으로 보는 자외선 사진을 찍어보면 분명해진다. 보라색 가을꽃은 노란 봄꽃보다 꿀샘이 상대적으로 선명하다. 벌·나비들에게 '생식할 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 빨리 여기로 오라'는 절박한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한라구절초는 생식 전후로 꽃 색깔이 바뀌기도 한다."

―구절초는 연분홍 꽃과 흰 꽃이 피는 걸로 알고 있다.

"한라산에서 텐트를 치고 일주일간 카메라를 설치해 촬영했다. 꽃가루받이(수분·受粉)를 하더니 연분홍 꽃이 흰 꽃이 됐다. 식물도감을 편찬한 학자들에게 말하니 '조용히 있어라'고 하면서, 다음 해 도감 내용을 바꾸었다."

―꽃 색깔이 바뀐다는 것은 이 자리에서 처음 알았다.

"꽃가루받이를 하고 나면 꽃의 강한 향(香)도 사라진다. 처녀와 아줌마 꽃은 분명하게 구분된다. 어떤 털개불알난은 꽃부리가 열려있고 어떤 놈은 닫혀있다. 백두산에서 열흘간 이 꽃을 촬영해봤다. 수분을 하고 나니 꽃부리를 닫아버리는 것이었다."
―대학에서 사진 전공을 안 한 것으로 아는데.

"스스로 '무학(無學)'이라고 말한다."

그는 경남 거제 출신이다. 처음 사진기를 만져본 것은 중학교 2학년 봄소풍 때였다. 친구가 갖고 온 일제 사진기에 홀렸다. 그 뒤로 동네 사진관에서 조수로 일하면서 사진을 배웠다. 대학은 축산과로 입학했으나 중도에 그만뒀다.

그는 군에서 제대한 뒤 환등기·슬라이드 등을 수입해 팔았다. 새마을운동이 한창때여서 업무 보고나 홍보를 위해 시청각 기재의 수요가 많았다고 한다.

생활이 안정되자 사진에 대한 열정이 발동했다. 그는 주로 민속 사진을 찍다가, 1980년대 초 설악산에서 1년 반 머물며 '설악산 4계(季)'를 촬영했다. 이 작품은 대한민국 문화영화제에서 우수작품상(1987년)을 받았다.

"설악산에서 머무는 동안 꽃을 발견했다. 은방울꽃이 신기해서 렌즈를 들이대고 관찰하다가 그 강한 향에 쓰러지면서 뭔가 꽂혔다. 그 뒤로 일 년에 약 200일을 야생화 찍으러 다녔다. 독도의 야생화를 찍기 위해 오징어배를 타고 풍랑 속에 가기도 했다. 젊었을 때는 카메라를 안고 죽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보관 중인 필름만 6만여장이다. 2007년부터 디지털 카메라로도 찍고 있지만, 필름 보관용 창고를 따로 두고 있다.

"이 필름들 중에는 싹트고, 꽃봉오리 달리고, 만개하고, 씨를 맺고, 떨어지고, 말라 죽는 꽃의 한해살이를 찍어놓은 필름도 7000여장이 있다. 꽃으로 치면 2000개쯤 된다."

―같은 꽃을 계속 반복해 찍었다는 뜻인데.

"꽃을 찍으러 가면 팻말 100개를 갖고 간다. 촬영 장소에 꽂아둔다. 한 번 찍고 한 달 뒤에 다시 가고, 이렇게 반복했다."

―지금껏 선생이 찍은 사진을 다 기억하나?

"사진을 찍을 때는 자기가 원하는 빛을 기다린다. 그때의 빛을 기억하기 때문에 사진을 보면 언제 어디서 찍었는지 정확히 안다. 아주 오래된 내 사진을 잘라서 무단 사용해도 나는 알아본다."

―사진은 그렇다 치고, 식물에 관한 지식은 어떻게 습득했나?

"1993년부터 2000년까지 KBS 아침 프로에서 꽃 동영상 코너를 맡았다. 꽃 이름 하나가 틀리면 전화가 수백 통 걸려왔다. 숱한 자료를 찾아보고 식물학자들에게 배웠다."

그는 우리나라와 같은 위도(緯度)에 있는 외국의 유명 식물원들을 찾아다니며 한국이 원산지로 돼 있는 야생화 300여종도 사진에 담았다. 학술적 의미가 있는 사실들을 그가 몸으로 밝혀낸 것도 제법 된다.

"멸종 위기 보호 식물로 지정된 '나도승마'는 미국이나 유럽 식물원에는 널려있다. 이는 1906년 프랑스 신부가 표본을 갖고 나가 퍼뜨린 것이다. 세계 라일락 시장의 30%를 점유하는 '미스김 라일락'도 1947년 미국의 엘윈 미더 박사가 북한산 백운대의 털개회나무 씨앗 12개를 받아가 개량한 것이다. 이 '미스김 라일락'은 국내에 역수입되고 있다."

유럽 화훼 시장에서 인기 있는 '잉거 비비추'가 우리의 토종에서 어떻게 옮겨갔는지를 국내에 알린 이도 그였다.

"1984년 미국의 배리 잉거 박사가 식물 조사를 하러 홍도에 갔다가 태풍으로 갇혔다. 거기서 발견한 '홍도 비비추'를 가져가 개량한 것이다. 세계적으로 300종이 넘는 비비추 중 유일하게 잎에서 광택이 나 정원의 음지 식물로는 최고다."

―그럼에도 식물학자들은 학위가 없는 선생을 '야생화 전문가'로서 인정하려고 하지 않을 텐데.

"나는 학자들을 안 건드리려고 한다. 현장 사진으로 확인된 것만 떠든다. 결코 주제넘게 말하지 않는다."

몇 년 전 그의 딸이 집 안에서 소형 금고를 발견했다. 돈, 금괴, 값비싼 패물인가 해서 열어보니 필름 60여장이 들어있었다. 딸이 그에게 물었을 때, "이 아버지가 죽으면 그걸 관 속에 넣어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거기에 넣어둔 것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진들이다. 내 사진이 인정 못 받기보다 나 혼자 보고 즐기는 게 낫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했다."

선뜻 이해가 안 됐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며 이해가 됐다. 그가 자신의 인생을 걸었으니.
 
 
 

댓글목록

산뜨락님의 댓글

no_profile 산뜨락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늘 신문을 보다가 가입 후 처음으로 게시판에 글을 스크랩해서 올려보았습니다. 일반회원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설용화님의 댓글의 댓글

설용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스크랩글 잘 봤습니다.^^

지금도 일반회원이십니다.^^

야사모는 회원이 주인인 사이트입니다.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 되고 있고요
1년 정회비 4만원을 내면, 정회원이 될 수 있고
일부 접근 못 하셨던 부분도 가능하시게 됩니다.^^

이슬초님의 댓글

no_profile 이슬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저두 몇년전 지인으로부터
한국야생화달력 (김정명)을 해마다 선물받은적이 있어 즐겨보던때가 있엇네요.
좋은정보의글 감사히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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