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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의 꽃이야기] 달콤한 추억, 까마중이 익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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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우구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0건 조회 3,106회 작성일 15-07-07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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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의 꽃이야기] 달콤한 추억, 까마중이 익어갑니다 

흑진주 같은 열매 한창 여물어 여름 내내 따 먹으면 달짝지근… 승려 머리 닮은 데서 이름 유래
봄 삘기, 여름엔 오디·산딸기도 친구같이 반가운 어릴 적 먹거리
박완서 소설선 싱아가 향수 자극

까마중이 익어가고 있습니다. 푸른 잎 사이에서 작은 꽃들이 꽃잎을 날렵하게 뒤로 제치며 노란 꽃술을 내밀고 있고, 한쪽에서는 열매가 한창 여물어가고 있습니다. 벌써 따 먹고 싶을 만큼 검게 익은 열매들도 있네요.

어린 시절 허기가 질 때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먹을거리 중 하나가 까마중이었습니다. 집 뒤꼍이나 길가에 흔했던 까마중은 여름 내내 까만 열매를 달고 있었고, 그런대로 달콤한 맛이 나는 게 먹을 만했습니다. 지역마다 부르는 이름이 달랐는데 우리 동네에서는 '먹때왈'이라고 불렀습니다. 산딸기를 '때왈'이라고 했는데 '먹때왈'은 검은 딸기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어릴 때는 까마중이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습니다. 동네 애들이 보이는 대로 따 먹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동네 외진 곳에 있는 까마중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몰래 따 먹곤 했습니다. 익은 것을 다 따 먹어도 며칠 후면 다시 까만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습니다. 먹다 보면 입과 손 주변에 검은 얼룩이 생기곤 했지요.

잘 익은 까만 열매는 흑진주처럼 생겼고, 군침이 절로 돌게 합니다. 얼마 전 고향집에 갔을 때 딸들에게 그 맛을 알려주려고 까마중을 따서 먹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 번 입에 넣더니 인상을 찡그리고 다시는 먹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다시 먹어보니 밍밍한 맛이 예전 맛은 아니었습니다. 제 입맛도 변해버린 모양입니다.

까마중은 어린 시절 추억의 먹을거리여서 소설 속에도 가끔 등장합니다. 6·25 직후 서울 영등포 공장지대가 배경인 황석영의 단편 '아우를 위하여'에도 까마중 따 먹는 얘기가 나옵니다. 주인공이 열한 살 시절을 회상하며 "그땔 생각하면 제일 먼저 까마중 열매가 떠오른다. (중략) 먼지를 닥지닥지 쓰고 열린 까마중 열매가 제법 달콤한 맛으로 유혹해서는 한 시간씩이나 지각하게 만들었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까마중이라는 이름은 까맣게 익은 열매가 승려 머리를 닮았다 하여 붙은 것입니다. 산이나 집 주변, 밭, 길가, 아파트 화단 등 사람이 사는 곳 주변 어디에서나 잘 자랍니다. 시골은 물론 도시에서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독성(毒性)이 약간 있으니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이미지 크게보기/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어릴 적 먹을거리는 까마중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봄에는 아카시아꽃과 삘기(여러해살이풀인 띠의 어린 꽃이삭이 밖으로 나오기 전에 연한 상태인 것. 우리 동네에서는 삐비라고 불렀다)를 따 먹었습니다. 언덕이나 밭가에 많은 삘기를 까서 먹으면 향긋하고 달짝지근한 게 먹을 만했지요. 그러나 삘기는 쇠면 먹지 못하기 때문에 먹을 수 있는 기간은 잠깐이었습니다.

뽕나무밭에 들어가 오디(뽕나무 열매)를 따 먹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뽕밭 주인한테 들키면 큰일 났기 때문에 늘 주변을 경계하면서 따 먹어야 했습니다. 여름에 산에 가면 산딸기가 지천으로 있었습니다. 우리 밭 옆에는 제법 우거진 산이 있었고, 오솔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여름 내내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산딸기밭이 있었습니다.

저에겐 까마중이 어린 시절 향수를 자극하는 먹을거리인데 소설가 박완서에겐 그게 싱아였던 모양입니다. 박완서의 자전적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는 싱아가 여덟살 소녀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나는 불현듯 싱아 생각이 났다. (중략) 그 줄기에는 마디가 있고, 찔레꽃 필 무렵 줄기가 가장 살이 오르고 연했다. 발그스름한 줄기를 끊어서 겉껍질을 길이로 벗겨내고 속살을 먹으면 새콤달콤했다. 입안에 군침이 돌게 신맛이, 아카시아꽃으로 상한 비위를 가라앉히는 데는 그만일 것 같다. 나는 마치 상처난 몸에 붙일 약초를 찾는 짐승처럼 조급하고도 간절하게 산속을 찾아 헤맸지만 싱아는 한 포기도 없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싱아는 메밀·여뀌·소리쟁이 등과 함께 마디풀과 식물입니다. 이 소설을 읽고 싱아 줄기의 새콤달콤한 맛이 어떤 것인지 맛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싱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밭 주변이나 하천가 같은 곳에 많았다는데 요즘 그런 서식지가 줄면서 산에 가야 볼 수 있을 정도로 귀해졌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지난 5월 말 경기도의 한 섬에 갔을 때 싱아 군락지를 발견하고 줄기를 꺾어 맛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생각만큼 시큼하지는 않았고 약간 떫은맛이 나면서도 물기가 많아 시원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약간 덜 익은 자두를 깨무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찔레순도 연할 때 껍질을 벗겨 먹으면 싱그럽고 달짝지근한 맛이 나는데 어려서 가끔 먹은 기억이 있습니다.

이 소설엔 메뿌리도 먹었다고 나오는데 이건 무엇일까요. 나팔꽃과 비슷한 꽃으로 우리 고유종인 메꽃이 있는데 메꽃의 뿌리줄기를 '메'라고 합니다. 메에는 전분이 풍부해 기근이 들었을 때 구황식품으로 이용했습니다. 메뿌리를 생으로 먹으면 단맛이 돌고, 쪄서 먹으면 군밤 비슷한 맛이 난다고 합니다. 까마중부터 싱아까지 추억의 먹을거리들은 볼 때마다 고향 친구를 만난 듯 반갑습니다.

 

김민철 사회정책부 차장

                 김민철 사회정책부 차장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댓글목록

우면산님의 댓글의 댓글

우면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킹벨님, 고맙습니다. 그림에 날렵한 까마중 꽃도 들어갔어야 했는데 좀 아쉽습니다. ^^

몽블랑님의 댓글

몽블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러고 보니 산과들에 먹거리가 많았네요
까마중은 맛이 별로여서 잘 안먹었고 주로 오디나 산딸기를 많이 따먹었던 기억이 있군요

알리움님의 댓글

no_profile 알리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흔하게 보이던 까마중...시큼새콤한 것이 먹을만하죠.
하나 따 먹고 싶을만틈 실감나는 이미지네요^^

전 싱아는 못 보고 자랐는지
먹어 본 기억이 없어요 ㅠㅠ

토담님의 댓글

토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참 이상하게도 아직까지도 전 싱아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릅니다...ㅠ~
까마중이 독성이 있는지 모르고, 어렸을 땐 많이도 따 먹었었어요.
먹을게 없어서...에고~

삼백초꽃님의 댓글

no_profile 삼백초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서울 마포에서  살았던 저는도 학교 오가는 길에 까맣게 익은
 까마중 열매를 따 먹은 기억이 있어요....

우구리님의 댓글

no_profile 우구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어릴적 배가 고파서 죽겠는데...뭐 가릴꺼 있습니까...
양파,정구지,삥기,홍당무,가지..뭐 주위 밭에는 항상 작황이 저조 했지여...ㅋㅋㅋ

가야금님의 댓글

가야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까마중과 산딸기, 오디 등 참 많이 먹었지요.
얼마 전에 잘 익은 산딸기를 참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덕분에 어릴 적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고 참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설용화님의 댓글

설용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우리동네에는 까마중 밖에 없었나 봅니다.
다른게 기억이 없습니다.

뜰안에 토마토와 딸기  포도나무가 있었는데
동네 애들 손에 남아 나질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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