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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의 꽃이야기] 노루오줌·사위질빵… 이런 이름 누가 지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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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우구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2건 조회 3,008회 작성일 15-08-11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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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유액 나온다고 애기똥풀, 열매 모양 비슷해서 개불알풀


匹夫匹婦가 사용해온 이름들… 1937년 수집해 체계적 정리


하나같이 정겹고 부르기 좋고 조상들 해학과 사고방식 담겨

        
서울 남산길을 걷다 보니 실개천을 따라 곳곳에 노루오줌이 피어 있다. 6월부터 피어 한창때는 좀 지났지만 아직 볼 만하다. 무슨 꽃 이름에 오줌이 들어가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꽃 자체는 연분홍 꽃대에 솜처럼 피어 있는 것이 눈길을 확 잡을 정도로 아름답다. 뿌리에서 노루 오줌 냄새가 난다고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독특한 이름 덕분에 한번 들으면 잊기 어려운 꽃이다. 옛날엔 노루가 살 만큼 깊은 산골에 피었는데 한번 심어 놓으면 특별히 관리하지 않아도 잘 자라 요즘은 화단 등에도 많이 심는다.

요즘 같은 한여름에 산기슭이나 길가에서 흰 눈이 쌓인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꽃이 있다. 사위질빵이다. 나무를 감고 올라가며 자라는 덩굴식물로 우리나라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사위질빵이라는 이름에는 장모의 사위 사랑이 담겨 있다. 사위질빵 줄기는 연약해서 조금만 힘을 주어도 끊어진다. 전하는 얘기에 따르면 장모는 가을걷이를 돕기 위해 오랜만에 처가에 온 사위가 일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렇다고 사위만 쉬라고 할 수도 없어서 사위는 사위질빵 줄기로 질빵(짐을 지는 줄)을 만들어 쓰도록 했다. 사위는 가벼운 짐만 지고 쉬엄쉬엄 하라는 장모의 배려가 담겨 있는 것이다.

노루오줌이나 사위질빵 같은 식물 이름은 누가 붙였을까. 우리나라 식물 이름을 학문적으로 최초로 정리한 식물도감은 일제 강점기인 1937년 나온 '조선식물향명집(鄕名集·정태현 등 4명)'이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상당수의 식물명은 이 책에서 정리한 것을 따르고 있다. 노루오줌이나 사위질빵도 마찬가지다
.

칼럼 관련 일러스트일러스트=이철원 기자

그전엔 같은 식물이라도 지방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른 경우가 많았다. 마치 표준말이 없는 상황과 같았다. 농촌의 사춘기 남녀가 사랑에 눈떠 가는 과정을 그린 김유정의 단편 '동백꽃'을 읽다 보면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노란 동백꽃'이 나오는 것이다. 동백꽃은 붉은색이 대부분이고 어쩌다 흰색이 있는데 김유정은 왜 노란 동백꽃이라고 했을까. 김유정이 말한 '동백'은 상록수 동백나무가 아니라 생강나무이다. 김유정의 고향인 강원도에서는 생강나무를 동백나무라고 불렀다. '동백꽃'은 1936년 발표한 소설이고, '조선식물향명집'이 나온 것은 다음 해였다. 따라서 김유정으로서는 당시 고향에서 부른 대로 동백꽃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 식물 이름을 처음으로 정리한 것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더구나 정태현 등이 '조선식물향명집'을 낸 시기는 조선어학회사건이 일어난 무렵이었다. 조선총독부는 "내선일체(內鮮一體)인데 왜 조선말로 식물 이름을 정리하느냐"고 제지했지만 학자들은 "시골에 일본어 모르는 사람이 많아서 교육시키기 위해 필요하다"고 둘러대 화를 면할 수 있었다(이우철 저 '한국 식물명의 유래').

우리나라 식물분류학의 초석을 놓은 정태현(1883~1971)은 수원농림학교 출신으로 해방 후 전남대·성균관대 교수로 재직했다. 정태현 등 4명은 조선박물연구회를 만들어 전국 팔도를 다니며 식물명을 채집하고 고문헌에 나오는 식물 이름까지 반영해 가장 적합한 이름을 골랐다. 여기에 필요에 따라 식물의 모양·색깔·냄새·맛 등 특징을 반영해 형용사 등을 붙여 종(種)을 구분했다. 따라서 이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식물 이름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붙여서 사용해온 이름 중에서 고른 것이다.

양반들은 굳이 산야(山野)를 다닐 일이 드물었을 것이므로 산에서 나무하는 남정네, 밭에서 풀을 뽑는 아낙네 등 필부필부(匹夫匹婦)들이 식물의 이름을 붙였을 가능성이 높다. 노루오줌이라고 부르는 것은 노루에 대해서도 잘 알고 식물 특징도 잘 파악해야 가능하다. 조상들은 줄기에 험한 가시가 있는 식물은 미운 며느리 밑이나 닦으라고 며느리밑씻개라 지었고, 이와 비슷하게 생긴 식물은 귀여운 열매가 며느리 배꼽 같다고 며느리배꼽이라 불렀다. 줄기를 자르면 노란 유액이 나온다고 애기똥풀, 열매 모양이 그것과 비슷하다고 개불알풀이라고 했다. 또 잎·가지에서 생강 냄새가 나서 생강나무, 꺾으면 '딱' 하고 총소리가 난다고 딱총나무라고 지었다. 이처럼 우리 식물명은 오감(五感)을 총동원한 것이고, 해학이 넘치고 정겨운 이름들이다. 다른 분야보다 우리 고유어들이 풍부하게 남아 있는 것도 우리 식물명의 특징이다. 물론 이름 유래를 알 수 없는 식물도 많고, 일부는 일본 이름을 번역했다는 시비에 휩싸여 있다.

'조선식물향명집'에 수록된 식물명은 2000여종인데 현재 이름이 알려진 우리나라 자생 식물은 대략 4000여종이다. 따라서 나머지 2000여종의 이름은 근래에 식물학자들이 산하를 다니며 정리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작업을 한 대표적인 식물학자는 '우리나라식물명감'의 박만규, '대한식물도감'을 낸 이창복, '한국식물도감'을 낸 이영노 등을 꼽을 수 있다. 이처럼 우리 자생식물 이름 하나하나에는 조상들의 해학과 애환, 식물학자들의 열정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니 숙연한 마음이 생긴다.


김민철 사회정책부 차장 사진

 

김민철 사회정책부 차장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댓글목록

가야금님의 댓글

가야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우리꽃 이름은 정말 우리 조상님들이 참잘  지어주었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합니다.
이름을 기억하기도 쉽고 재미도 있고요.
하늘을 쳐다보면 하늘나리!  땅을 보고 있으면 땅나리! 잎이 솔잎같으면 솔나리 등등
노란물이 나오면 애기똥풀!  쥐오줌 냄새가 나면 쥐오줌풀 등 정말 재미있어요.

삼백초꽃님의 댓글

no_profile 삼백초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정겨운 이름들이 참 많죠?
이름봄에 나는 꽃다지...강아지풀....병아리풀....
재미있는 이름들이 많아요.....

지강 라파엘님의 댓글

지강 라파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뵈면 어수룩한 촌 아저씨 같은 분이 이리 명쾌한 이야기를 세상에 올리는 분이라고 암만 생각해도 공감이 잘 안됩니다.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열혈팬 우구리위원장님께도 감사 !

우면산님의 댓글

no_profile 우면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격려 말씀 주셔서 고맙습니다. ^.^
'일부는 일본 이름을 번역했다는 시비에 휩싸여 있다'고 한줄로 표현했는데,
며느리밑씻개 등 이런 이름들을 어떻게 봐야할지 아직도 생각이 정리되지 않습니다.

꼬레아님의 댓글

no_profile 꼬레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전혀 식물에는 문외한 인생 60년
이제서야 무슨 바람인지
야생화 찾아 가는 길에
많이 궁금했던
야생화 정명은 누가 짓는가?

우면산님에 의해 그 베일에 쌓였던 의문점이 풀리는군요.
감사합니다.
또한
우구리 위원장님 게시해 준 덕분에 알게 되어서 감사 하구요.

조선식물향명집(鄕名集·정태현 등 4명)

대표적인 식물학자
'우리나라식물명감'의 박만규,
'대한식물도감'을 낸 이창복,
'한국식물도감'을 낸 이영노 등

현재는 어느 기관, 단체에서 하고 있는지 걍 급 궁금 해 지네요.
분기별, 반기별, 년 단위로 개정, 수정 보완 하고 있을까?
아시는 분 계시면 리플 주시면 합니다.
알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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