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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누르미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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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놀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8건 조회 1,406회 작성일 08-12-22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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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마주 앉아 서로 눈빛을 확인하며 이야기를 나눈다면 마음 전하기가 쉬울텐데 이렇게 모니터를 마주하고 짧은 몇 마디 댓글로 의사를 전달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걸 잘 알면서도 괜한 무례를 범했다 싶어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제가 올린 댓글로 인해 크게 마음 상하지 않으시기를 바라며 저의 의도를 좀더 풀어 보겠습니다.


먼저 많은 이야기보다 제 마음을 제대로 알려드릴 만한 사진이 있어 함께 올립니다.

 

위 사진은 지난 9월초 강원도에 사시는 한 야사모 회원님댁 풍경 가운데 한 부분입니다.

그때는 제가 막 야생화의 아름다움에 눈을 뜨기 시작한 무렵이었는데 첫 느낌이 참으로 충격적이었습니다.

보시는 것처럼 그냥 잡풀더미입니다.

이미 깨끗하게 뽑아 버렸거나, 뽑아 버려야했을, 아무 짝에도 쓸모없고 성가신 그냥 잡풀입니다.

헌데...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너울거리는 하얀 참취꽃, 창문을 기웃거리던 푸른달개비, 그리고 정말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풀들이 그들만의 모양과 색깔로 가지가지 꽃을 피우며 늦여름 햇빛 속에서 자신들의 삶을 찬양이라도 하는 듯 기세등등하게 우거져 있었습니다. 그때 거기서 저는 사람이 꾸미지 않은,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자연이 만든 그 꽃밭 속에서 이런 기가 막힌 풍경을 내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더 나아가서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맙고 감격스러웠던지 지금도 가슴이 뜁니다. 그 뒤, 말 할 것도 없이 저는 다 살아버린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야사모에서 꽃바람이 들어 정신을 잃었습니다.


꽃누르미님의 꽃사랑에 대한 기준과 방법의 차이로 제가 압화에 대해 착각을 했을 수도 있고 또 제가 압화를 배운 적도, 해본 적도 없습니다만 기본적인 것은 대충이나마 듣고 보았습니다.


예전에 제가 어렸을 때 집안 어르신들은 추석을 앞두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뚫어진 문종이를 새로 바르셨는데 손이 많이 닿는 손잡이가 있는 부분에는 안팍으로 문종이를 덧붙이면서 그냥 창호지만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국화잎이나 코스모스 잎,  아니면 대나무 잎사귀를 뜯어다 모양을 내어 정말 예술적으로 마감을 하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또 가을이면 곱게 물든 나뭇잎이 이뻐서 길에 떨어진 것을 주어 책갈피 사이에 넣어 두었다가 색연필로 이쁘게 시를 적어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거나, 풀밭을 뒤져 네잎크로버 잎을 따서 곱게 말린 다음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해 주었던 추억도 있구요.

그것이 꽃누르미님이 하고 계시는 압화의 시작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외국에서는 오래전부터 귀부인들이 취미로 시작한 압화가 예술의 한 장르로 발전을 했지만  우리 한국 사람들의 정서에는 맞지 않는 측면도 있지 않았을가 싶습니다.  우리 어르신들은 환경보호라는 개념도 없던 시절이었지만 아이들이 생각 없이 호기심에 꽃을 꺽거나 따오면 야단부터 치셨습니다.

그 이쁜 걸 그냥 두면 오래오래 볼 텐데 인정머리 없이 함부로 상하게 했다고.

지천으로 널린 풀나무와 꽃은 소중하게 아끼고 대할 자연이란 것을 이미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러다 90년대 후반 한국의 경제사정이 어렵던 시절 전후 무렵부터 압화가 예술을 앞세운 경제적 수단이 되면서 큰 붐이 일었고 지금도 부업과 자격증을 목적으로 성행하고 있음을 인터넷을 검색해서 확인했습니다.


압화 광고문구 가운데 이런 글이 있더군요.


친환경적인 예술!


들판에 지천인 재료는 말 그대로 무상에 친환경적이겠지요.

허지만 식물의 고유한 색깔은 급속냉동건조 방법이 아니면 보전하기가 어려운데다가 압화를 하기 위해서는 그 방법을 사용할 수 없으므로 수분을 제거하는 시리카겔을 쓴다거나, 꽃잎의 변색, 탈색을 막기 위해서는 화공약품 처리를 해야 하고, 또 말린 재료를 붙이는 과정에서도  방부제가 들어간 접착제를 쓰고, 작품이 완성된 뒤 습기에 상하지 않도록 방부제 처리도 해야 하는데 과연 이것을 친환경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물론 원예용 꽃을 주로 이용하지만 그건 돈이 들어야 하니까 문제는 어디서든 손쉽고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재료가 야생화라는 것입니다.


압화도 풀꽃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알리는 한 방법의 예술이란 것은 확실합니다.

허나 이곳 야사모는 자연 상태에서 철따라 피고 지는 온갖 풀꽃의 신묘한 아름다움에 반해서, 함께 그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즐기며,  자연이 사람에게 거저 베풀어 주는 이 고마움을 오래도록 소중하게 아끼고 보호하기 위해 어떤 종류가 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떻게 자라는지 등등의 정보를 서로 찾아 나누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자연이고, 사람은 어떤 기술, 어떤 재료로도 그와 같은 아름다움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걸 이미 터득하였기에 한 번 보는 것만으로,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고 감격하는 사람들, 그래서 풀꽃에 대한 큰 경외심과 미안함을 품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왜냐구요?

우리가 그냥 머리만 숙이면, 몸을 낮추거나 무릅을 조금 내리기만 하면 언제든, 어디서든 풀꽃은 우리에게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우리를 기쁨에 겨운 희열로 신음하게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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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지않아 꽃소식이 전해 오면 그때 제가 동행을 해 드릴테니까 꼭 함께 나가 보시기 바랍니다.

지난 가을 대덕사 골짜기에서 만난 물매화 같은 꽃을 한 번 만나 보시면 그 순간 ‘영원한 예술’이 무엇인지, ‘우리풀꽃의 소중함은 알리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단 번에 이해하시게 될 겁니다.  뵙기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댓글목록

샘터돌이님의 댓글

no_profile 샘터돌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사랑을 허믄 예뻐져여
아름다움을 찾의믄
무에등둥
문제가 문제되지않져
걍~
아름다움에 젖으면 되는 것을~.~*

꽃누르미님의 댓글

no_profile 꽃누르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네, 놀지기님의 아름다운 마음을 이해하지요.
상업적으로 마구마구 꽃을 따는 사람들도 있겠지요.
저도 처음에 꽃을 땄을때  꼭 죄를 짓는것 같아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렸는지.....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속삭인답니다. "얘야 미안해, 그렇지만 영원한 예술로 승화 시켜줄께"
그러면 옆의 꽃도" 나도 따가 주세요, 나도 데려가 주세요" 라고 부르짓는것 같아요.
"애야, 미안해,  쬐끔만 필요 하단다. 너를 못데려 가서 미안해" 세상만사는 마음먹기 달렸다지요. 며칠만 지나면 시들어 버리고 말것을 생각하면 참 안타깝지요.
저도 놀지기님 처럼 그렇게 생각 했었지요. 그러나 압화를 한다고 해서 꽃을 마구 꺾고 그러지 않아요. 꽃을 만지는 사람일수록 꽃을 더욱 아끼고 사랑하니 너무 마음 아파 하지 마세요.  그리고 어느 봄날에 꽃만나러 함께 가요.

초이스님의 댓글

no_profile 초이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글로써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참 쉽지만은 않은 일인데
두 분이 너그럽게 서로를 헤아려 주시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얼렁 필드에서 만나시길...

푸른 솔님의 댓글

no_profile 푸른 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보는 시각, 생각하는 방법, 행동하는 양식...얼굴이 다르듯 이 모든게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역시사지 하면서 한 걸음 물러나서 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ㅎㅎ

아낙네님의 댓글

no_profile 아낙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뒤늦게 본 글이나 감동적이고 어쩜 제가 생각하는 것과 이리 비슷할까 놀라와 글 남겨요~
두 분 다  자연을 사랑 하고 자연에 대한 예의가 있으신 분이네요.
참 이곳은 아름다운 곳입니다.  또 제 생각과 비슷한 사람들을 많이 만날수 있어 놀랍고 반갑답니다.
저도 압화도 절화도 원예도 조금씩 하기에 두분 마음 모두 이해가 가네요.
사랑하는 방법도 여러가지라 ... 보이는 만큼 알고 아는만큼 보이더라구요. 더 많이 볼수 있도록 사랑하는 여러 방법도 알아가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