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
작성일 04-02-1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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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2월)
얕으막한 언덕을 막 넘으면서 나는 이 나무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나무는 나를 외면하고 천연덕스럽게 딴청을 부리기 시작했다.
겨울바람 부는 황량한 벌판에 찍을 것도 없고 또 찍어야 할 것도 없어
종종걸음으로 언덕을 내려가면서 이 나무 힐끗쳐다 봐도 계속 딴짓을 하고 있었다.
나무곁을 지나 두어 걸음쯤 내려가고 있을 때 어디선가 쉰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카메라 양반! 그냥 가지말고 나도 한번 찍어주시구려..."
나무는 비굴한 웃음을 띠며 조금은 춥다는 듯 몸을 움추리며 내게 말했다.
"풋..."하고 나는 실소했지만 나무는 어느새 포즈를 잡느라 몸을 비틀기에 여념이 없었다.
마치 솜바지 저고리 입은 시골 계집아이가 사진찍기 수줍은 생경한 자세처럼 억지스럽다.
"나무 아저씨 그게 아니고 자연스럽게 서 계세요..."
"꽃들은 사진을 찍을 때 이렇게 하던데..."
하기야 누가 이 못 생긴 나무를 사진 찍어준 적이 있겠는가. 언제 포즈라는 것을 취해봤겠는가.
먼 발치에서 꽃들이 양양거리며 사진찍느라 부리는 포즈를 얼마나 따라 해보고 싶었을까.
"어깨에 힘 빼시고 그냥 서 계신게 더 멋져요..."
나무는 아니라는 듯 고개를 갸우뚱이며 내가 시키는대로 했다. 3장을 찍어 주었다.
댓글목록 11
좋은일을 하셨네요..꽃소리님의 마음을 보는것 같아 흐뭇합니다...나무의 소리도 듣고,역기 야사모회원이십니다
누구나 멋만을 찾을것인데.... 님은 작은것에 다정한 정을 주시는군요.... 잘 보았습니다.
꽃소리님의 글을 읽으니 나무의 나지막한 소리가 들리는군요. 지 눈에도 멋지게 보입니다.
저라면 무심코 지나쳤을텐데... 말씀하시는 걸 보니... 반지의 제왕 3편이 생각나는 군요... 그곳에서 살아 있는 나무와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 빛이 나는군요.
꽃소리! 자기 멋재이...
꽃소리님께서 저 나무에 사랑을 담아주셨네요 정말 따스한 글입니다. 나무가 더 멋지게 보입니다.
추운겨울,따뜻한 글, 아름다운 조화로군요
진정한 겨울 나무로 군요.
글, 사진 넘 좋군요, 멋진 겨울나무 정취를 느끼게 됩니다.
자칫 뒷배경까지 담으셨으면 별로 눈에 띄지도 않을듯한데, 정말 많은 의미를 담은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