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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봄 낙엽 사이에 핀 ‘미니스커트’, 처녀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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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우면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3건 조회 2,740회 작성일 14-03-25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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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는 권여선의 소설 <처녀치마>에 나오는 처녀치마 이야기입니다. 위클리공감 기고글.
처녀치마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꽃 중 하나입니다. ^^

초봄 낙엽 사이에 핀 ‘미니스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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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치마’는 이름부터 특이해 야생화 공부를 시작할 때부터 관심이 갔다. 3월 말에서 4월까지 산속에서 수줍은 듯 아래를 향해 연보라색 꽃을 피운다.

수목원을 다니면서 이 꽃을 가끔 보았지만, 야생의 처녀치마를 처음 본 것은 2005년 봄 북한산에서였다. 북한산에 처녀치마가 있다는 말을 듣고 등산 갈 때마다 찾아보았지만 쉽게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런데 2005년 4월 낙엽이 수북이 쌓인 틈으로 앙증맞게 올라온 꽃을 목격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책에서 본 사진과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지 깜짝 놀랄 정도였다. 뭉쳐 나는 꽃도 딱 요즘 아가씨들이 입는 미니스커트같이 생겼고, 로제트형으로 퍼진 잎도 치마와 닮았다.

권여선의 단편소설 <처녀치마>가 있다는 것을 알고부터 꼭 읽고 싶었다. 권여선은 2008년 <사랑을 믿다>로 이상문학상을, 2012년 장편소설 <레가토>로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은 중견 작가다.

<처녀치마>는 10년을 만나는 사이 두 번 이혼한 남자와 헤어지지 못하는 노처녀 여주인공이 휴가를 내 고향에 다녀오는 이야기다. 1박2일 장항선 근처에 있는 고향을 찾아 부모 위패를 모신 사찰에 다녀오고, 어린 시절 친구를 만나 술 한잔 한 뒤 귀경하는 줄거리다.

2

소설에서 처녀치마는 두 번 등장한다. 첫번째는 ‘산사의 마당에서 나는 선숙이 한 소쿠리 뜯어온 처녀치마를 가지고 소꿉을 살았다. 붉은 꽃은 쿵쿵 찧어 양념을 만들어 바람든 처녀 치마 폭처럼 넓은 잎사귀에 발라 김치를 담갔다’는 식으로 어린 시절 추억을 담고 있다.

두번째는 소설 주제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한때 나의 표정 하나, 말 한마디에 몸이 달아 발을 구르던 너. 기적처럼 네 몸에서 연두빛 실타래 같은 처녀치마의 잎사귀가 벌어질까’라는 대목이다.

소설은 여주인공의 복잡한 감정, 이제 자신이 ‘남자친구에게 아무 자극도 영감도 줄 수 없는 존재’라는 절망감을 작품 내내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남자친구가 다시 자신에게 안달복달하기를, 자신이 그의 가슴에서 다시 싱싱하게 피어나기를 갈망하는 심정을 처녀치마를 통해 표현한 것 같다.

처녀치마는 전국 산지에서 자라는 백합과 식물이다. 다년생 초본으로 주로 습지와 물기가 많은 경사면에서 자란다. 꽃은 자주색 또는 보라색으로 줄기 끝에 3~10개 정도가 뭉쳐 달린다. 꽃잎 밖으로는 긴 암술대가 나와 있다. 아직 찬바람이 남아 있는 이른 봄, 주변 나무에 잎이 달리기 전에 얼른 꽃을 피운 다음 새 싹을 틔워 내실을 다지는 전략을 쓰는 식물이다.

특히 처녀치마는 겨울에도 푸른 잎을 유지한 채 추위를 이겨내는데, 땅속 온도를 이용하는 지혜 때문에 가능하다. 잎이 방석처럼 땅바닥에 바짝 달라붙어 따뜻한 지온으로 차가운 바람과 영하의 낮은 온도를 이겨내고 봄이 오자마자 꽃대를 올리는 것이다.

꽃이 필 때 꽃대는 10센티미터 이내로 작지만 수정을 한 다음에는 50센티미터 정도까지 훌쩍 크는 특징이 있다. 원주 오크밸리 리조트 뒷산에서 60센티미터 이상 꽃대를 높인 처녀치마를 본 적도 있다. 수정한 다음 꽃대를 높이 올리는 것은 꽃씨를 조금이라도 멀리 퍼뜨리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번 주말에 처녀치마를 보러 수원 칠보산에 갈 생각이다. 처녀치마를 못 보고 지나가는 봄은 허전하기까지 하다. 초봄에 낙엽 사이에서 신비한 빛을 발하는 처녀치마꽃을 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글과 사진·김민철(조선일보 기자·<문학 속에 핀 꽃들> 저자) 2014.03.24

댓글목록

우면산님의 댓글

no_profile 우면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제가 글을 써서 '정치인과 꽃'이라는 제목을 단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회수가 나오지 않아 '노무현 대통령은 처녀치마를 보았을까?'라고 제목을 바꾸었더니 금방 수만 건 조회수를 기록했습니다. 제목 영향이 컸지요. ^^ 그런 사연을 제가 쓴 책 '문학 속에 핀 꽃들'에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하여튼 이 꽃은 특이한 이름 덕을 보는 꽃 같습니다. ^^

박다리님의 댓글

no_profile 박다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ㅎ~ 오늘 우리동네 처녀치마를 보고 왔더니 우면산님이 책속의 처녀치마를 올리셨군요.
나는 사진속의 처녀치마를 올리겠습니다. ㅎ~

장끼님의 댓글

no_profile 장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어디로 가면 볼 수 있나요?
수원 칠보산 어디쯤인가요?
문학적 향기가 있는 처녀치마 꽃~~
꼭 한번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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