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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의 녹의홍상 닮은 꽃, 성석제의 <협죽도 그늘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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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우면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1건 조회 3,155회 작성일 14-06-09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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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의 단편 <협죽도 그늘 아래>에서는 제목처럼 협죽도가 주요 소재로 나오고 있습니다.
저는 협죽도를 신부들이 입는 녹의홍상으로 해석해 보았습니다. ^.^ 위클리공감 기고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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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의 단편 <협죽도 그늘 아래>에는 “한 여자가 앉아 있다. 가시리로 가는 길목, 협죽도 그늘 아래”라는 문장이 열 번 이상 나온다.

여기서 ‘한 여자’는 결혼하자마자 6·25전쟁이 나서 학병으로 입대한 남편을 기다리는 70세 할머니다. 스무살에 결혼했으니 50년째 남편을 기다리는 것이다.

대학생 남편은 전쟁이 나자 합방도 하지 못한 채 학병으로 입대할 수밖에 없었다. 여자는 시댁 식구와 함께 전쟁을 겪었다. 피난길에 시아버지는 친정에 가 있으라고 했지만 여자는 '피가 흘러내리도록 입술을 문 채 고개를 흔들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행방불명이라는 통보도 받았다. 하지만 여자는 여전히 남편을 기다린다. 그렇게 50년을 기다린 여자가 그의 칠순 잔치에 찾아온 친척들을 ‘가시리로 가는 길목’에서 배웅한 다음 치잣빛 저고리와 보랏빛 치마를 곱게 차려입고 남편을 기다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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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남편과 신행(新行) 며칠을 함께 보냈을 뿐이다. 명확한 신체접촉은 신랑이 입대하는 날 우는 여자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닦아준 것밖에 나오지 않는다. 칠순 잔치에 온 환갑이 넘은 질부는 여자에게 농을 던졌다. “새점마, 우리가 다 궁금해하는 게 있수. 혹 새점마 처녀 아니우?” 여자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일부종사(一夫從事)라는 전근대적인 관습으로, 6·25라는 민족적 비극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애잔하다. 소설에서는 “여자는 자기의 일생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고 표현했다.

협죽도(夾竹桃)라는 꽃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할머니가 사는 가시리는 남부지방 어느 곳이다. 협죽도는 노지에서는 제주도와 남해안 일대에서만 자라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댓잎같이 생긴 잎, 복사꽃같이 붉은 꽃을 가졌다고 해서 이같은 이름을 얻었다. 잎이 버드나무잎 같아서 유도화(柳桃花)라고도 부른다. 인도가 원산지로 국내에는 1920년대 외국에서 들여와 심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트남 등 아열대 지역이나 제주도에 가면 가로수로 길게 심어놓은 것을 볼 수 있다. 꽃은 7~8월 한여름에 핀다.

협죽도의 꽃과 잎은 신부들이 흔히 입는 한복, 녹의홍상(綠衣紅裳) 그대로다. 할머니는 잠시나마 남편과 함께한 신부 시절을 그리워하며 협죽도 그늘 아래 앉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협죽도가 강한 독성을 갖고 있는 것이 알려지면서 최근 수난을 당하고 있다. 이 나무에 청산가리의 6천 배에 달한다는 ‘라신’이라는 맹독 성분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제주도에서 관광객이 나뭇가지를 꺾어 젓가락으로 썼다가 숨지는 사건까지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소설에도 이 이야기가 나온다. 부산시는 지난해 부산시청 주변에 있는 200여 그루 등 협죽도 1천여 그루를 제거했다. 제주도에서도 많이 베어내 눈에 띄게 줄었다. 일부 학자들은 “독성 때문이라면 베어낼 나무가 한둘이 아니고, 일부러 먹지 않으면 위험하지 않은데 굳이 제거하는 것은 코미디 같은 일”이라는 의견도 보이고 있다.

성석제는 ‘우리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 ‘입담의 달인’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중견 소설가다. 대표작으로 이 소설이 담긴 소설집 <홀림>,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위풍당당>, <단 한 번의 연애> 등이 있다. 주로 힘없는 소시민이나 건달, 노름꾼 등 비주류 인생을 특유의 입담으로 풀어내는데, <협죽도 그늘 아래>에서는 진지하게 한 할머니의 인생을 파고들었다. 이 소설은 영어와 일어 번역본도 있다.

글·김민철(조선일보 기자·<문학 속에 핀 꽃들> 저자) 2014.06.09

댓글목록

킹스밸리님의 댓글

no_profile 킹스밸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녹의홍상이라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리는 꽃이네요!

이 협죽도를 화분에 담아서 실내에서도 키운 적이 있었는데, ... 진짜 독성이 그렇게 강할까요?

우면산님의 댓글의 댓글

no_profile 우면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제거해야할 정도인지는 논란이 있지만 독성은 확실히 있는 모양입니다. 나무를 잘라 어항에 넣으면 물고기가 죽을 정도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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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님의 댓글

no_profile 영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독성이 있어 더예쁜자태를 보이는지도 모르겠네요.
여름에 제주도에 가서 녀석을 만나보면서 할머니를 함 그려봐야겠다는 생각이....
좋은글 감사 합니다!

우면산님의 댓글

no_profile 우면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글을 마무리하기 전에 산방님께 여쭤보니 아직 제주도에도 협죽도가 피지 않았고, 한여름인 7~8월에 핀다고 하더군요. ^^

우면산님의 댓글의 댓글

no_profile 우면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저도 오늘 아침에 동네를 한바퀴 돌아 출근하다 이 꽃이 핀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사진을 올릴 수가 없네요.

꼬레아님의 댓글

no_profile 꼬레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협죽도 그늘 아래에는 한 여자가 앉아 있네]
녹의홍상 곱게 차려 입고 가신 님 오시기만 기다리는 슬픈 시대를 살아 내신 우리네 어머니 이야기 감동으로 다가 옵니다. ^^

산방님의 댓글

no_profile 산방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제주에 도 막피기 시작합니다.
몇 년 전만 해도 가로수로 많이 보였었는데
쥐도 새도 이 산방도 모르게 사라졌어요.
근데 국제학교가 모여 있는 "서귀포시 대정읍 구억리"에 곶자왈을 파괴하고 떡하니
협죽도를 많이 심어 놨어요.
남유럽에 온 느낌이 나더라구요.

"가시리"는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가 있어요.
내용상 거기하고는 관계가 없겠지요? 
상징적인 동네일뿐...

대박님의 댓글

대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색감이 예쁜 친구들은 독성이 있구먼요..
제주 수학여행때 설명해준
동백꽃과 유도화는 조선시대 귀양살이의 뒷배경으로 나오는데..
이 글을 읽으니 전부 뻥???

저도 유도화가 조선시대 사약 원료라고 설명해줘서 그리 이야기 했는데..

그 전에 제주에만 있었는지
1920년 이후에 온건지???
진실이 꼭 필요한건 뭔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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