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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 기자(아뒤:우면산 님)의 꽃이야기 전문(12/9일자)을 여기에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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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우구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3건 조회 3,282회 작성일 14-12-09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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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蘭草(난초), 가장 청초하지만 가장 음흉한 식물

 

식물군 중 제일 진화해 3만여種, 동양란 수수하고 서양란은 화려
승진 축하 난은 대개 수입 보세란… 남획으로 멸종 위기 처한 種 많아
선비들, 蘭 자태·향기 칭찬했지만 위장·寄生으로 사는 '이중인격자'

김민철 사회정책부 차장 사진
김민철 사회정책부 차장

 



《"아! 이 향은?"

훤의 짧은 외침에 제운은 몸을 경직시켰다. 방 안 가득히 은은한 난향이 차 있었다. (중략)

"소녀, 인사 여쭙사옵니다."

짧은 말을 흘리는 목소리는 천상의 것인 양 마음속을 울리며 방 안 가득 난향과 더불어 퍼졌다가 사라졌다.》

얼마 전 큰 인기를 끈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은 정은궐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것이다. 소설은 조선시대 가상(假想)의 왕과 액받이 무녀(巫女)의 사랑을 그린 역사 로맨스 소설이다.

조선의 젊은 왕 이훤은 호위무사 제운과 함께 온양행궁 근처에서 미행(微行·지위가 높은 사람이 남루한 옷차림을 하고 남모르게 다님)을 하다 비를 피해 한 민가에 들어갔다. 거기엔 아름다운 무녀가 있었다. 왕이 정체를 숨겼는데도 여인은 단번에 알아보고 예를 갖춘다. 여인에게서는 은은한 난향(蘭香)이 풍겼다.

이처럼 소설에서는 무녀 월이나, 연우라는 소녀가 나올 때마다 난향이 은은하게 풍기고 있다. 왕은 경복궁 취로정에서 월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까이 오지 마라! 네게서 나는 그 향이 나를 더 미치게 만들고 있어. (중략) 멀어지지 마라! 내게서 멀어지지도 마라."》

난은 사군자(四君子) 중 하나로 옛 선비들의 사랑을 받은 꽃이다. 일제강점기의 지식인 문일평은 그의 책 '화하만필(花下漫筆·꽃밭 속의 생각)'에서 "난은 그 꽃의 자태가 고아할 뿐 아니라 꽃대와 잎이 청초하고 향기가 그윽하게 멀리까지 퍼진다"며 "기품이 우아하고 운치가 풍부한 점이 풀꽃 중에 뛰어나다"고 했다. 수줍은 듯 단아한 인상을 갖고 있는 월은 난초 향기와 잘 어울린다. 소설책 표지 그림도 난초에 나비 두 마리가 다가가는 장면이다.

민가에서 조우하기 몇년 전 왕세자 시절 이훤은 얼굴도 모르는 허염의 누이 연우와 연서(戀書)를 주고받으면서 사랑을 키운다. 연우가 보낸 편지에서도 난향이 은은했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연우 낭자가 세자빈으로 간택됐지만 연우는 시름시름 앓다가 혼례도 치르기 전에 죽는다. 마침내 왕에 오른 이훤이 온양행궁 근처에서 월을 만났고, 이어 월이 액받이 무녀로 왕의 침소에 들어오고, 왕이 월에게서 연우의 향기를 맡은 다음 연우의 죽음에 얽힌 거대한 음모를 파헤치는 내용이다. 여느 로맨스 소설처럼 결론은 월이 중전에 올라 왕과 행복하게 잘 사는 해피엔딩이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난 또는 난초는 난초과 식물을 통칭하는 말이다. 난초라는 식물은 따로 없다. 난초과 식물들은 잎이 나란히맥이고, 꽃이 좌우는 대칭이지만 상하는 다른 공통점이 있다. 꽃 가운데 아래쪽에는 입술 꽃잎이, 뒷면에는 길쭉한 꽃주머니가 있는 것도 같다. 이런 기본 구성을 공유하면서 다양한 색과 모양을 가진 종(種)들이 있는데, 편의상 동양란과 서양란, 자생 난초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동양란은 가는 잎과 은은한 향기, 수수한 꽃 모양을 가졌고, 서양란은 호접란같이 색깔과 모양이 화려하다.

동양란은 흔히 '춘란(春蘭)'이라고 부르는 보춘화(報春花), 한겨울에 꽃을 피우는 한란(寒蘭) 등이 있다. 축하할 일이 있을 때 보내는 동양란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은 보세란(報歲蘭)으로 대부분 푸젠·광둥성 등 중국 남부와 대만에서 생산해 국내로 들여온 것이다. '보세'는 '새해를 알린다'는 뜻으로, 1~2월에 집중적으로 꽃이 피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서양란은 대부분 동남아 등 열대·아열대 지방의 난초를 유럽에서 인위적으로 개량한 것들이다.

난초는 식물 중에서 가장 진화한 그룹이다. 난초과는 식물군(群)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며, 학계에 알려진 것만 3만여종에 이른다. 자생 난초는 꽃 모양에 따라 갈매기·해오라비·제비·잠자리·새우·감자·지네발·타래·복주머니 등 다양한 이름이 붙어 있다. 난초들을 무분별하게 몰래 캐가는 일이 잦아지면서 풍란·광릉요강꽃 등 멸종 위기에 처한 난초도 많다. 반대로 자란처럼 희귀종이었다가 증식을 통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난도 있다.

난초는 가장 진화한 식물답게 꽃가루받이를 해줄 곤충을 유인하기 위해 교묘한 속임수를 쓰는 종이 많다. 색깔이나 향기, 생김새 등에서 난초의 위장술은 식물학자들도 놀랄 정도다. 생김새와 냄새를 암벌과 비슷하게 위장해 수벌을 유혹하는 난초도 있다. 난초 종류의 3분의 1 정도는 어떤 보답도 없이 꽃가루 매개자들을 속이는 것으로 학자들은 파악하고 있다. 더 이상 광합성을 하지 않고 다른 식물의 영양분에 의지하는 난초 종류도 적지 않다. 선비들이 고고하다고 예찬한 보춘화 등 동양란들도 기본적으로 씨앗이 너무 작기 때문에 균류에 기대 싹을 틔울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한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마치 사람 사는 세상의 이중인격자를 보는 듯하다. '오키드(orchid)'라는 난초의 영어 이름은 고환(睾丸)을 뜻하는 그리스어(orchis)에서 나온 것이다. 몇몇 종류의 덩이뿌리가 고환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댓글목록

설용화님의 댓글

설용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빨리 피우면 이때 즈음에는
보춘화를 느꼈던 적이 있었네요

일요일 모임에서
김민철 차장님과 더덕맨의 난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 때문인지
글이 더 재미있습니다.^^

킹스밸리님의 댓글

no_profile 킹스밸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난은 사기꾼에다 한탕주의, ... ㅋㅋ
일단 열매가 맺혔다하면 수십만개~ 수백만개 종자가 만들어진다하니, ...

우면산님의 댓글

no_profile 우면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일요일 모임에서 좋은 말씀을 주신 더덕맨님께 감사드립니다. ^^
그전에 써놓았는데 저희 말로 '야마가 별로'여서 걱정하다 더덕맨님과 말씀 나눈 다음 상당히 많이 고쳤습니다. ^^
우구리 회장님, 킹밸님, 설님도 고맙습니다. ^^

야책님의 댓글

no_profile 야책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래 전에 '난'이니 '혜'이니 갑론을박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땐 난으로 먹고 살 수 있을 것도 같았는데..

몽블랑님의 댓글

몽블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군요
몇년전 남쪽의 어떤 섬에서 사방에 널려있는 보춘화를 만나 흥분해서 소릴 질렀던 때가 생각납니다
내년 봄엔 춘란과 삼지닥나무등을 담으러 먼길을 떠나볼 생각입니다
저도 춘란을 매우 좋아합니다

박다리님의 댓글

no_profile 박다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식물에 설명을 이렇게 쉽게, 재미있게, 기억되게.......... 역시 프로는 다르군요. ㅎ~
난초의 이중 인격.... (이중 초격이라 해야 되나요? ㅎ~)... 이 단어가 머리속에 팍 들어옵니다.
하지만 생물중에 이런 이중 인격을 가지지 않을게 있을까 하고 혼자 생각해 봅니다.
서로 돕고.... 또는 서로 헤치면서 종족에 적정개체를 유지하면서 살아기는 생물들을 보면 참 신기하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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