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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의 꽃이야기] 거문도 '미스 수선화' 만나러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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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우구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6건 조회 3,274회 작성일 16-02-25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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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사모 회원이신 조선일보 김민철 논설 위원의 글입니다


[김민철의 꽃이야기] 거문도 '미스 수선화' 만나러 가는 길 

동백·냉이·광대나물·제비꽃… 남쪽 섬엔 이미 봄기운 완연
거문도에 自生하는 금잔옥대, 흰 꽃에 노란 잔 기품 있고 단정
가장 먼저 피는 건 제주 수선화… 雪中에도 피어 강한 생명력 실감

                  
지난 주말 거문도 동백터널숲을 지나 흰 등대가 보이자 절로 발걸음이 빨라졌다. 야생의 수선화가 그 근처에 있다고 했다.

거문도 수선화는 야생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로망 중 하나다. 초봄 육지 화단에서도 수선화를 볼 수 있지만 대부분 유럽에서 개량한 원예종이다. 꽃 전체가 노란색인 것이 많다. 거문도 수선화는 흰색 꽃잎에 컵 모양의 노란색 부화관(副花冠·덧꽃부리)이 조화를 이룬 금잔옥대(金盞玉臺)다. 금 술잔을 옥대에 받쳐놓은 모양이라는 뜻이다. 더구나 거문도 수선화는 오래전부터 야생 상태로 자라고 있다.

이날 서울 아침 기온은 영하였다. 수선화 만나러 가는 길, 거문도는 봄기운이 완연했다. 유채꽃은 이미 화사하게 만개해 무리지어 해풍에 흔들렸고, 양지바른 곳을 따라 연보라 큰개불알풀꽃, 하얀 냉이꽃, 노란 민들레, 자주색 광대나물, 분홍색 제비꽃까지 피었다. 쇠별꽃과 점나도나물도 막 하얀 꽃을 피우며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1.2㎞ 동백터널숲 길은 뚝뚝 떨어진 동백꽃들로 빨갛게 물들었다. 모두 머지않아 서울에서도 볼 수 있는 꽃들이다.

드디어 등대 아래 수선화 무리에 다가가자 꽃향기가 훅 밀려들었다. 맑고도 신선한 향기였다. 거문도 수선화는 꽃지름이 3㎝ 정도로, 사진을 보면서 생각한 것보다 약간 작았다. 그러나 흰 꽃잎에 노란 부화관을 단 자태가 단정하면서도 기품 있어 보였다. 꽃대마다 5~6송이 피는데 벌써 진 것도 있다. 조정래 대하소설 '태백산맥'에서는 외서댁의 생각을 빌려 수선화에 대해 "꽃 모양도 특이하고 곧게 뻗은 진초록 잎새도 정갈해서 좋았지만 너무 연약해 빨리 지는 것이 아쉬웠고…"라고 했는데, 수선화의 특징들이 잘 나타나 있다. 이런 수선화가 파란 하늘과 바다, 흰 등대와 어우러진 것을 보니 서울에서 4시간 버스 타고, 2시간여 배 타고, 다시 2시간 걸어온 보람이 있었다.

[김민철의 꽃이야기] 거문도 '미스 수선화' 만나러 가는 길 /이철원 기자
수선화는 원예종으로 개량한 것까지 포함해 종류가 다양하다. 그중에서 이른 봄 자연 상태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거문도와 제주도 수선화다. 두 지역은 거리상 그리 멀지 않지만 수선화 꽃 모양은 상당히 다르다. 거문도 수선화는 부화관이 있는 금잔옥대지만, 제주 수선화는 부화관 없이 꽃 가운데에 꽃잎이 오글오글 모여 있는 형태다. 제주도에는 이 수선화가 널려 있어서 제주도에 유배 간 추사 김정희가 '(귀한 수선화를) 소와 말에게 먹이거나 보리밭에 나면 원수 보듯 파낸다'고 안타까워할 정도였다.

야생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야사모'에서 매년 제일 먼저 꽃소식을 전하는 사람은 제주도 '산방'님이다. 산방님은 새해 첫날 즈음 친정집 앞에서 만나는 수선화 사진을 올려 회원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다. 거문도 수선화도 빨리 피지만, 제주 수선화는 더 일찍, 이르면 12월부터 피기 때문이다. 눈 속에서도 피어나 강한 생명력을 실감하게 하는 것이 수선화다. 그래서 수선화는 겨울꽃인지 봄꽃인지 헷갈리는 꽃이다. 다만 오글오글 제주도 수선화보다는 금잔옥대 거문도 수선화가 더 예쁘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거문도 수선화가 우리나라 '미스 수선화'인 셈이다. 요즘엔 제주도에도 금잔옥대 수선화를 많이 심어 놓았다.

거문도 수선화(왼쪽), 제주 수선화.
수선화의 원산지는 지중해 연안이라고 나와 있다. 그런 수선화가 언제 어떻게 거문도에 전해졌는지 정확히 알 길이 없다. 다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수선화는 남해 섬 중에서도 유독 거문도에서만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영국 해군이 러시아의 남하를 막는다는 구실로 1885년부터 2년 가까이 거문도를 무단 점령한 일이 있다. 이 사건 전후 1860~1930년대에도 거문도를 드나들었다고 한다. 이런 점들로 미루어 영국 해군이 수선화를 가져와 심은 것 아닌가 하고 추정해보는 사람이 많다. 제주 수선화도 유입 경로가 알려지지 않았다.

수선화는 그리스신화에서 미소년 나르키소스가 물 위에 비친 자기 모습에 반해 바라보다 물에 빠져 죽은 자리에서 피어났다는 꽃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는 데다 꽃도 예뻐서 많은 사람이 수선화를 소재로 노래를 만들고 시나 소설을 쓰기도 했다. 워즈워스, 김동명의 시 '수선화'가 대표적이다.

야생화 애호가들은 각자 계절마다 꼭 만나고 싶어 하는 꽃이 있다. 거문도 수선화는 필자가 10여년 전 야생화에 처음 관심을 가졌을 때부터 꼭 한번 보고 싶었던 꽃이다. 하지만 거문도 가기도, 피는 시기 맞추기도 쉽지 않아 미루다가 이번에 큰 맘 먹고 찾아갔다. 올해 수선화를 시작으로 야생의 깽깽이풀, 날개하늘나리, 광릉요강꽃같이 오래전부터 보고 싶던 꽃들을 차례로 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설렌다.

김민철 논설위원

                    김민철 논설위원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댓글목록

킹스밸리님의 댓글

no_profile 킹스밸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맛갈나는 글과 그림, 자세한 설명 잘 읽었습니다.
여기에 늘 글 올려주는 우리 위원장님께도 깊은 감사드립니다!^^

영감님의 댓글

no_profile 영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쁜수선화 잘봅니다.
일곱송이 수선화를 이쁘게 담아보구싶은마음 굴뚝 같은데 우면산님 걸루 대신 해야쥐......  *^*

몽블랑님의 댓글

몽블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거문도로 금잔옥대를 만나러 한번 가봐야겠군요
지난 연말연시 오키나와에서 보니 그곳에서도 금잔옥대가 도처에 있더군요

몽블랑님의 댓글의 댓글

몽블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사진에 담아온 것은 유명한 우후야 식당가는 길옆에서 담았으니 그것은 식재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구석구석 돌아보면 자연산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더군요

토담님의 댓글

토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늘 기사에 닉이 오른 제주산방님이 부럽습니다.
제가 야사모에서 이름 좀 날릴 때(?) 우면산님이 있었으면 제 이름도 신문에 날 수도 있었을지 모르는데...ㅎㅎ
늘 감칠맛나고 제가 모르던 이야기를 잘도 풀어내시는 우면산님의 글솜씨는 더더욱 부럽구요...^^

박다리님의 댓글

no_profile 박다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우면산님의 멋진 글솜씨로 만난 거문도의 야생 수선화가 보고싶어 집니다.
그 보고싶은 꽃들을 올해는 모두 만나시길 바라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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