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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여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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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야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6건 조회 2,081회 작성일 08-12-10 11:27

본문

 

 

첫 번째 사진을 보시죠. 누가 이것을 거들떠보겠어요.(제가 일부러 제일 못 나온 사진을 올리기는 했지만) 들판이나 산기슭에 흔히 자라는 잡초에 불과하죠. 그리고 볼품도 없고요. 우리 인생도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이 애기는 제 나름의 존재 이유를 갖기 위해, 바보여뀌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해, 그래서 개체를 보존하기 위해 누가 보아주든 말든 땅 속의 자양분을 열심히 빨아들이고, 때맞추어 제게 주어진 햇빛을 받아들이며 긴긴 시간을 보낸 것이죠. 어떤 때는 미당 선생님의 시에 나오는 것처럼 처절하게 울부짖는 소쩍새의 울음소리에 가슴 아파하기도 했을 것이고, 먹구름 속에서 울려 퍼지는 뇌성벽력에 마음 졸이기도 했을 것이고, 세상을 뒤바꾸는 폭우에 뿌리째 쓸려가려는 순간도, 온몸이 물속에 잠겨 죽음을 기다리는 순간도 있었을 것이고, 춘곤(春困)에 시달리는 봄을 보내기도 했을 것이며, 여름의 땡볕 가뭄에 목말라 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시련의 순간에도 이 애기는 꿈을 접지 않았지요.

마침내 두 번째 사진과 같은 앙증스러운 모습의 꽃봉오리와 꽃을 피워내게 된 것이지요. 힘겨운 것인가요? 그동안 너무 애를 많이 쓴 탓인가요? 곁에 선 꼬리조팝나무의 잎에 제 줄기를 기대고 있네요. 그러나 제 자태를 잃어버리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화려함을 자랑하고 있다고는 볼 수 없겠죠? 꼭 그래야 할 만큼의 모습으로 제 몸을 꾸미고 있는 것이지요. 꽃잎은 흰색 바탕에 보일 듯 말 듯 약간의 붉은빛이 돌고 있습니다. 마치 곁의 꽃봉오리의 붉은 빛이 투명한 꽃잎에 비쳐 보이는 것처럼 보이네요. 그런 다섯 장의 꽃잎 안에는 순백의 꽃술들이 잘 갖추어져 있네요. 그 꽃술들도 분홍빛이 감돌아야 하지만 사진에는 너무도 맑은 순백으로 보이네요. 붉은 꽃봉오리와 흰빛의 꽃잎이 색감의 대비를 일으켜 서로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죠? 그래서 아마 이런 꽃들은 서로 다른 조화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한꺼번에 입술을 여는 법이 없나 봅니다. 입술을 닫고 곁의 친구 말을 경청하며 다소곳이 침묵하고 있다가 그 친구가 이제 제 역할을 다하고 입술을 닫는 그 즈음 아마 꽃봉오리는 개화하겠지요.

우리의 삶도 고통과 시련의 연속이지요. 왜 고해(苦海)라는 말이 생겨났겠어요. 자신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쓸어가는 장마의 순간도, 염천(炎天)에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가뭄에 바작바작 속을 태우는 순간도 있을 것입니다. 자신이 너무 볼품없는 존재가 아닌가 하고 회의하는 순간도 있겠죠. 갈등과 방황과 좌절이 자신을 괴롭히는 긴긴 시간들을 우리는 가져왔고, 앞으로도 또 맛보게 되겠죠.

우리 꿈을 꾸며, 어떤 순간에도 그것을 접지 말고 삽시다. 사람으로서 꼭 그래야 할 만큼의 꿈을 꾸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갖은 시련과 고통을 견뎌내자는 말입니다.

사람 중에는 사람답지 않은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봅니다. 시련과 고통에 그만 주저앉아 버려 열매를 맺기는커녕 꽃도 한 번 피워 보지 못하고 시드는 사람과, 인간으로 넘봐서는 안 되는 신과 같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능력을 탐하는 사람이 그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들이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야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우연히 수그릴 줄도 아는 꽃줄기를 보았습니다. 저는 그 순간 겸양의 미덕을 생각했죠. 아래를 향해 땅을 바라보며 애써 피운 꽃의 모습을 자랑하지 않는 미덕을 본 것이죠.

자연은 그저 거기 그렇게 있지만 제가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나요? 전 아직 도통하지 못해 이런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헤어나지 못한답니다.

문득 제 머릿속에 다른 개체들을 발판삼아 타고 올라 제 몸에만 햇빛의 은총을 받아들여 무성한 잎과 튼실한 줄기를 키우고, 그 줄기와 잎 사이로 보랏빛 꽃대를 자랑스럽게 우뚝 세운 칡넝쿨이 떠오른 것은 우연일까요? 칡넝쿨은 제 몸 아래에서 제 발판이었던 다른 이들이 시들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요? 마침내 버팀목이 죽어 사라지면 자신도 허물어질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일까요?

바보여뀌는 바보스럽지 않습니다. 여뀌의 종들이 매운 맛을 지니고 있는 데 반해 이 애기만은 그 맛이 덜한 것을 보고 일본 놈, 아니 일본 애, 아니 일본 사람들이 바보스럽다고 붙인 이름을 그대로 번역해 쓰고 있답니다. 일본인들의 사고방식에 문제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게 바보스러운 것인가요? 제 나름의 독특한 성질을 지닌 것이죠. 만약 여러분들이 이름을 붙인다면 뭐라고 부르겠습니까? 역시 바보라고 부르겠습니까?

대다수의 사람들과 다른 점이 보이면 별종으로 취급해 따돌려 버리는 세상은 바람직하지 못하겠지요. 마찬가지로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 또한 바람직하지 않겠죠. 남이 보면 하찮다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바보도 그 나름의 소중한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남들의 따가운 시선을 감내하며 처절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 기억합시다. 그는 바보이어서가 아니라 제 꿈이 너무 소중해서 바보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보도 대접받는 세상을 위해 뭔가 할 일은 없나요?


댓글목록

샘터돌이님의 댓글

no_profile 샘터돌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바보두 맘 놓구 살아가는 세상!!
바보두 존경받는 세상
걍~
모다 자신의 일에 렬심인 세상

바보루 보이지만
아름다웁게 보믄 모다 아름다운 세상이듯이
美의 기준점을 어데루 두구 잇을까여
이쁜것에~
추소미두 잇거든여

그렇다믄
자연의 모든 것은 아름답지 않을까여
때론 더러븐 마음두 아름다울수가 잇져
서로가 공존허기 위해선 아름답져

그랴여
모다 자신을 바라보믄서
바보두 대접받는 세상을 맨들기 위혀서는
문제는 관심과 배려와 사랑스러븐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설용화님의 댓글

설용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적어도 여기 야사모 에서는 바보도
바보 그자체로 존종과 애정을 주는
멋있는 사람들이 많이 존재한다고 생각듭니다.^^

타인을 배려하고 인정하는 것은
각 개인에 역량이지
누가 어떻게 도와 준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존재감...항상 화두 아닐까 생각듭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꽃마리*님의 댓글

no_profile 꽃마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렇게 좋은 글을 이제사 읽었네요.
난 그냥 바보여뀌라고 불러주고 싶어요.
단지 일본 사람들과는 다른 해석으로...바라볼수록 보고 싶어지는 '바보여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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