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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가 탱자를 갖고 제주도 온 까닭은? 윤대녕 소설 <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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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우면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0건 조회 3,580회 작성일 14-02-12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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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위클리공감'이라는 문화체육관광부 발행 잡지에 격주로 꽃이 주요 소재나 상징으로 쓰인 소설을
다루는 글을 기고합니다. 혹시 관심있는 분들 읽어보시라고 이번주 글 올립니다.
제가 쓴 책 '문학 속에 핀 꽃들'과 비슷한 포맷입니다. 반응이 좋으면 그동안 기고한 글도... ^.^ 
 
1
 
2윤대녕 소설 <탱자>를 읽고 여운이 오래 남았다. 좋은 소설, 수작(秀作)이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 소설에서는 제목인 ‘탱자’가 큰고모의 사랑과 회한을 상징하고 있다.
 
‘나’는 30년 동안 연락이 없던 늙은 고모로부터 제주도에 보름 정도 머물 생각이니 방을 좀 구해 달라는 편지를 받는다. 고모는 중학교 졸업도 하기 전(열여섯에) 절름발이 담임선생과 눈이 맞아 야반도주했다.
 
그러나 담임선생 어머니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쳐 집으로 돌아온 뒤 식구들에게서 구박을 받는다. 다른 여자와 결혼한 담임선생은 5년 후 다시 찾아간 고모에게 퍼런 탱자를 몇 개 따주면서 “이것이 노랗게 익을 때 한번 찾아가마”고 한다. 그의 말대로 훗날 찾아오긴 했지만 그는 한숨만 내쉬다 돌아갔다.
 
고모는 스물여덟에 다른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남편이 한센병에 걸려 자살한 후 서울로 올라가 생선 장사를 시작으로 분식집, 포목점 등을 하며 자식을 키워냈다. 아들은 잘 성장해 결혼도 하고 대기업에 취업해 미국으로 떠났다.
이제 나이가 들어 분당의 40평 아파트에 살 정도로 생활에 여유가 생겼지만, 혼자 사는 게 힘들어 제주에 들른 것이다.
 
고모는 간간이 ‘나’에게 자신의 신산(辛酸)한 인생을 털어놓는다. 제주에 오기 전 고모는 이제는 늙은 그 담임선생을 다시 찾아갔다. 그리고 “다시 합쳐 살자”는 말을 뿌리치고 옛날에 퍼런 탱자를 전해 받았던 학교로 찾아가 탱자를 한보따리 따온다. 고모는 “내 부질없는 마음엔 탱자를 갖고 물을 건너면 혹시 귤이 되지 않을까 싶어 들고 왔더니라”고 말한다. 고모가 다시 육지로 떠난 지 석 달 후 나는 아버지로부터 고모의 부음과 함께 고모가 이미 5개월 전 폐암 선고를 받았다는 사실을 전해 듣는다.
 
이 소설에서 탱자와 귤이 각각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가시 돋친 나무에 열리는 탱자는 고모의 험한 삶과 사랑을, 귤은 보다 평탄한 삶과 사랑을 상징하지 않을까 짐작해 보았다.
 
탱자나무는 어릴 적 과수원이나 집 울타리로 쓰인 흔한 나무였다. 요즘은 벽돌 담장에 밀려 시골에 가도 흔히 볼 수 있는 나무가 아니다. 어릴 적 가시에 찔려가며 노란 탱자를 따서 갖고 놀거나 간간이 맛본 기억이 있다. 잘 익은 것도 상당히 시지만 약간 달짝지근한 맛도 있다. 5월에 피는 꽃은 향기가 은은하다.
 
윤대녕은 1962년 충남 예산 출신으로 <은어낚시통신> 등을 쓴 우리나라 대표 작가 중 한 명이다. <탱자>는 2004년 발표한 것으로 시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 섬세한 감수성 등 기존 윤대녕 소설의 특징이 어느 정도 남아 있으면서도 여자의 일생을 잔잔하게 담아 또 다른 느낌을 주고 있다. 그는 2003년 4월부터 2년간 제주도에 내려가 살았는데, 이때의 경험이 소설에 녹아 있는 것 같다.
 
‘여행’은 윤대녕 소설을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다. 여행 중 겪는 일과 만나는 사람들을 소설 소재로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탱자>는 화자(話者)가 여행하는 다른 소설과 달리 고모가 경주 등을 거쳐 화자가 있는 제주도로 여행을 오는 구조다.
 
이 소설이 주는 감동은 고모의 인생에 대한 안쓰러움과 함께 죽음을 앞두고도 경우를 잃지 않는 고모의 처신에 대한 공감에서 오는 것 같다. 고모가 한 말, “누가 만드신 것인지 세상은 참 어여쁜 것이더구나. 눈에 보이는 것들이 이제는 모두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참으로 눈물겹도록 아름답구나”도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글·김민철(조선일보 기자·<문학 속에 핀 꽃들> 저자)
 

댓글목록

지강님의 댓글

지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재미난 이야기 글이 많아져 , 아름다움만 있는 야사모홈이 아니라 훈훈한 인정도 느껴지는 공간이 되겠네요.
다음 이야기를 기대캐 하십니다.

꼬레아님의 댓글

no_profile 꼬레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연재 칼럼 : [텔링스토리가 있는 야생화(야사모)] - 이런 제목으로 연속게재 했으면 해요. ^^
넘 좋았어요. ~

킹스밸리님의 댓글

no_profile 킹스밸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다음편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쭉~ 올려주세요!!!

저는 탱자하면 호랑나비 애벌레를 떠 올립니다.
봄이면 담장 옆 탱자나무 잎에 알을 낳는 호랑나비가 보이고, 얼마있지 않아서 애벌레들이 기어다니기 시작하죠! 몇잠을 자고난 호랑나비 애벌레는 귀엽게도, 무섭게도 보이는데, 나무가지로 살짝 공격을 해보면 무서운 뿔 같은 것을 돌출해서 방어자세를 취하는 귀염둥이지요.
그러다가 야들이 보이지 않으면 어느새 번데기로 변해 있고, 다시 얼마 있지 않아서 나풀거리는 호랑나비의 춤을 보게 되죠.

이 녀석들은 유난히 운향과 식물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탱자나무, 산초나무, 초피나무 이런 곳에 호랑나비가 보이면, 짝짓기 한다음에 분명 알 낳으러 온 녀석들일 겁니다!^^
야책님은 싫어하시는 나비겠다! ㅎㅎ

설용화님의 댓글의 댓글

설용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초등 5학년때 땡자나무에서
호랑나비 애벌래를 잡아다 키운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감회가 소록소록^^

영감님의 댓글

no_profile 영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은글 잘 보구 갑니다!
꽃과 어우러져있는 좋은 글들이 옆에 자리하고 있는 "야사모" 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감사 합니다 ^*^

우구리님의 댓글

no_profile 우구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우면산님..인쟈 클났다
계속 연재 안해주몬 맞아 쥭는다 아이가...
근뒤 몇몇분은 진짜 성질 아주 고약하더라구요...으흐흐

야책님의 댓글

no_profile 야책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귤과 나비는 특히 호랑나비는 천생연분 같더라고요. 우리 동네에는 나비학자 석주명님이 살았는데 토평은 한때 귤이 유명했더랬습니다. 석주명과 나비 그리고 귤. 이렇게 딱 맞아 떨어지는 경우가 또 을까 싶어 나비와 귤을 소재로 한 그 무엇을 하면 좋겠다 하여 주절주절 거리며 다녔던 때가 있었습니다.
탱자를 여기선 개탕쉬낭이라고 부르는 곳도 있는데 ... 탱자 가시는 고둥 따위를 꺼내 먹을 때 왓따입니다. ㅋ

킹스밸리님의 댓글의 댓글

no_profile 킹스밸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바짝 마른 탱자 가시는 유성기 바늘이 없을 때 대용품으로도 써봤던 적이 있습니다!^^
무뎌진 바늘보다 성능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로옹달샘님의 댓글

no_profile 로옹달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팔청춘 꽃다운 16에  담임선상님을?  그소녀는 아마도 절름발이 선생님에 대한  pathos적  감성이었을터  .. 근대 그 담임선생은 뭐람 그어린걸?  우면산님  ㅎㅎ 자꾸 올려주세요 잼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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