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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구름 닮은 조팝나무꽃, 이혜경 소설 <피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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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우면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4건 조회 3,354회 작성일 14-04-30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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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이혜경 소설 <피아간(彼我間)>에 나오는 조팝나무꽃 이야기입니다. 위클리공감 기고글.
진도 참사로 경황이 없어서 이제야 올리는데, 그 사이 조팝나무꽃이 대부분 진 것 같습니다. ㅠㅠ

흰구름 닮은 아스피린 원료           

1

 

2요즘 도로변 산기슭이나 언덕에 흰구름처럼 하얗게 핀 꽃이 있다면 조팝나무꽃일 가능성이 높다.

조팝나무는 우리나라 전역의 산과 들에 흔히 자라는 나무다. 흰색의 작은 꽃이 다닥다닥 피어 있는 가지들이 모여 봄바람에 살랑거리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흰구름이나 솜덩이처럼 생겼다. 4월이나 5월 시골길을 가다 보면 산기슭은 물론 밭둑에도 무더기로 피어 있고, 낮은 담장이나 울타리를 따라 심어놓기도 했다. 풍성한 꽃이 보기 좋아 공원에 조경용으로 심는 경우도 많다. 특히 바람이 불 때 함께 실려오는 조팝나무꽃 향기는 발걸음을 멈추게 할 정도로 상쾌하다. ‘조팝’이라는 이름은 다닥다닥 붙은 꽃송이가 튀긴 좁쌀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중견작가 이혜경의 단편 <피아간(彼我間)>에는 조팝나무꽃이 인상적으로 그려져 있다. 이 소설은 작가의 세번째 소설집 <틈새> 수록작 중 하나로 2006년 이수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소설은 주인공 경은이 주위에 불임 사실을 숨긴 채 입양 신청을 해놓고 임신한 것처럼 꾸미는 것이 주요 줄거리다. 주인공은 자신이 아이를 낳은 것처럼 꾸미기 위해 임신 개월 수에 맞게 위장 복대를 차면서 남편을 제외한 주변 사람들을 속인다. 여기에 주인공 아버지의 임종을 전후로 드러나는 가족들의 이기적인 모습이 교차하면서 ‘핏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경은은 결혼 전 격주로 주말에 장애아 시설에서 봉사할 정도로 ‘더불어 사는’ 삶을 추구했다. 구색 맞추듯 아이를 꼭 낳아야 한다는 생각도 거부하고 있었다. 결혼을 앞두고 남편을 장애인 시설에 데리고 간 것은 ‘어디에 머리 두고 살아가는지’, ‘내 가족, 내 핏줄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경은은 장애인 시설을 나오면서 동행에 대한 답례로 남편에게 조팝나무 향기를 선물한다.

“목을 감고 대롱대롱 매달리는 아이들을 떼어놓고 타박타박 걸어 나오는 봄날, 야산 어귀에는 조팝나무가 축복처럼 하얀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경은이 문득 걸음을 멈췄다. 여기예요. 여기가 향기가 가장 짙은 곳이에요. 야산이 들길과 만나는 지점, 그곳에만 이르면 무슨 세례라도 주는 듯 맑은 향기가 끼쳐왔다.”

경은은 주위 사람들의 이기적이고 가식적인 모습을 냉담하게 지켜보고 비판하지만, 불임의 여파는 경은 자신조차 그런 모습과 별로 다를 게 없도록 만든다. 연속되는 유산에 따라 입양을 원하지만 어른들의 완강한 반대로 거짓 임신을 해야 하는, ‘생명이 아니라 거짓을’ 키워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또 입양을 신청할 때 ‘험한 일 겪은 게 아니라, 서로 사랑해서 생겨난 아이였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대목에 이르면, 경은도 속물적인 기대와 우려를 갖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조팝나무꽃 같은 순백한 이상이 현실 속에서 점차 색이 바래져 가는 것이다.

조팝나무는 인류에게 매우 고마운 식물이다. 전 세계 인구가 하루 1억알 넘게 먹는다는 진통제 ‘아스피린’은 조팝나무 추출물로 처음 만들어졌다. 독일 바이엘사가 1899년 조팝나무 추출물질을 정제해 상품화한 것이 바로 아스피린이다. 아스피린이라는 이름은 조팝나무의 속명 ‘스파이리어(Spiraea)’와 ‘아세틸’의 머리 글자인 ‘아’를 붙여 만든 것이다.

우리 아파트 앞 산기슭에도 조팝나무꽃이 몽글몽글 피어나고 있다.

바람 잔잔할 때 나가 사진 몇 장 찍어 놓아야겠다. 경은이 속물적이지 않은 삶을 다짐하며 장래 남편에게 선물한 조팝나무 향기도 다시 한번 음미해 보고 싶다.

글과 사진·김민철(조선일보 기자·<문학 속에 핀 꽃들> 저자)

댓글목록

지강님의 댓글

지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름다운 조팝나무 꽃 이야기로군요. 흰구름 같다는 표현이 공감이 됩니다.
서울에 게시는 그분도 연상이 되구요.
아름다운 꽃이야기 흥미롭습니다.

흰구름님의 댓글

no_profile 흰구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숲속에서 하얗게 핀 조팝나무를 보면 정말 상쾌하지요
하늘에 흰구름 둥실떠있는 기분 좋은 날에 만나면 더욱 더~ㅎㅎ
우면산님 덕분에 문학속에  야생화들이  깊이 스며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네요

킹스밸리님의 댓글

no_profile 킹스밸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스피린의 원료가 버드나무인 줄만 알았더니, 이 조팝나무도 아스피린의 원료 식물이군요!
글 잘 읽었습니다!!!

우면산님의 댓글의 댓글

no_profile 우면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버드나무 껍질에서 처음 해열진통 약효를 확인했고, 독일 바이엘사가 조팝나무에서 약의 주성분인 살리실산을 추출해내 시판했다고 합니다.

설용화님의 댓글

설용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4살 된 딸 아이가 돌 되던 해 부터 몇년 동안을
남산 하얏트 호텔 뒤편의 야생화 공원에 다녔는데

조팝나무 필 무렵이면 저녁 산책삼아 유모차 끌고 다녔습니다.
첫애 때에도 둘째 때에도...
그곳의 조팝나무 향기가 그립네요^^

영감님의 댓글

no_profile 영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조팝나무가 흰구름 같다는건 그럴듯 한데.... 
흰구름이 조팝나무 같지는 않은 것은 왜그런지...    좋은글 잘 보구 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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