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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과 자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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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원순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9건 조회 4,500회 작성일 12-12-18 20:59

본문

 
 

경복궁과 자금성

 

 

경복궁에 대해 내가 줄곳 듣는 기분 나쁘고 화나는 말은 “자금성 (紫金城 )에 비하면 뒷간밖에 안된다”는 식의 자기비하다. 나는 이런말을 한국인에게서 들을 뿐 외국인들 한테선 들어본 적이 없다. 중국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역사적 콤플렉스에다 유난히 스케일에 열등의식이 많아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겠지만 경복궁에는 자금성에서는 볼 수 없는 또다른 미학과 매력과 자랑이 있다.

사람들은 은연중 경복궁이 자금성을 모방해 축소해 지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자금성이 완공된 것은 1420년이고 경복궁이 완공된것은 1395년이니, 경복궁이 25년 먼저 지어진 것이다.

-----중략 -----

경복궁의 중요한 특징이자 자금성과 구별되는 가장 큰 차이점은 위치설정(location)에 있다. 자금성은 건축디자인의 기본취지가 위압감을 주는 장대함의 과시에 있다. 이에 반해 경복궁은 우리나라 건축의 중요한 특징인 주변환경, 즉 자연과의 어울림이라는 미덕을 지니고 있다. 조선 왕조 건국자들이 이 위치를 찾아내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검토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는지 모른다. 건축미학 자체가 다른 것이다. 주변의 경관을 자신의 경관으로 끌어안는 차경(借景)의 미학을 경복궁처럼 훌륭히 이루어낸 건축은 세계에서 드물다.

각국의 왕궁은 그 나름의 특징을 갖고 있다. 모든 왕궁은 그 시대, 그나라의 최고 기술과 최고 재료, 동원 가능한 재력의 소산이며 그 건축의 모습은 주어진 자연 환경에 따라 성격을 달리한다. 광활한 평지에 세워진 중국의 자금성은 그 자체가 성곽이다. 한적한 시골에 지어진 베르싸유궁은 목가적 전원과 어울린다. 외침이 많았던 헝가리 부다왕궁은 도나우강 언덕위 산성 속에 지어졌다. 빈궁전은 귀족의 저택으로 포위된 도심 속에서 홀로 우뚝 군림하면서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이에 비해 우리 경복궁은 어느 시점에서 보아도 북악산과 인왕산을 바라볼수 있는 자연과의 어울림이 자랑이다.그것은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미학의 문제다.

경복궁은 거기에 북악산과 인왕산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지어진 건축이다. 궁궐 너머로 보이는 북악산과 인왕산은 경복궁의 가시적 정원인 것이다.

2009년 가을 LA카운티 미술관(LACMA,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이 한국 전시실을 지하 35평에서 지상 170평으로 확장 신설하면서 개관기념으로 한국미술의 정체성에 관해 강연해줄 것을 요청했을 때 내가 택한 주제는 ‘한국의 자연과 건축’이었다.

이때 나는 인왕산과 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근정전 (勤政殿) 사진을 비추면서 경복궁 건축을 이야기했다. 강연이 끝나고 다과회 자리에서 LACMA의 후원회원이라는 한 미국인이 나에게

다가와 확인하는 질문을 했다.

“당신이 보여준 왕궁 사진은 강연 제목(자연과 건축)에 맞추어 만든 합성사진이었습니까?

우리는 너무도 익숙한 경관이어서 별것 아닌 줄 알고 한국의 건축이라면 당연히 그런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한국에 와보지 않은 그에게는 상상이 가지않는 신비롭고도 환상적인 가상의 아름다움으로 보인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 왕궁에 그런 산이 있는가. 자금성 주위에도 그런 산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연못에서 파낸 흙으로 자금성 북쪽에 우리의 북악산에 비하면 ‘뒷간’보다도 작은 가산(假山)을 만들었다. 그리고 자금성에 들어서면 나무 한 그루 없다. 자객이 들어올까봐 있던 나무도 다 없애버린 것이다.그렇게 철저히 자연을 배제할 수가 없다.

경복궁의 각 권역을 이어주는 길에는 아름다운 소나무, 버드나무, 때죽나무, 마가목, 산딸나무 등 각 건물에 어울리는 나무들이 배치되어 있다. 그 종류가 100종이 넘는다. 경복궁과 자금성을 비교했을때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자연과의 어울림이다.

자금성은 자금성이고 경복궁은 경복궁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오늘날 일반인이 관람하는 문화재로서의 경복궁과 자금성에도 큰 차이가 있다. 더 이상 그 옛날의 황제와 임금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일반 시민과 관광객이 관람하는 궁궐이지만 자금성과 달리 경복궁에는 ‘인간적 체취가 남아 있다’는 점에서 각별한 매력이 있다. 자금성에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입구부터 끝까지 그저 장대하다는 느낌하나만 일어난다. 어떤 사람은 한여름 땡볕 속에 그 먼 데까지 다녀온 소감을, 위압감 외에 아무런 멋도 못 느끼면서 들어갔으니까 나가기 위해 무작정 걸어야 했다고 말한다.

-------중 략--------

아무런 선입견 없이 찾아온 안목있는 외국인들이 경복궁을 보고 가슴벅찬 감동을 받는 것은

인간의 살 내음이 살아있는 궁궐이라는 점 때문이다. 내가 문화재청장으로 있을때 스웨덴 국왕과 덴마크 여왕이 경복궁과 창덕궁을 방문하였다. 이분들은 자기나라 궁궐에 살고 있기 때문인지 각 공간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유럽의 궁궐은 한 건물 안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짐에 비해 우리 궁궐은 권역으로 나뉘어 있음을 인상깊이 보고 있었다.

한번은 경복궁에서 서양인 노부부가 아미산(峨嵋山) 굴뚝과 자경전 꽃담장을 아주 기쁜 얼굴로 눈여겨보고 있다가 내가 눈인사를 건네자 여기가 무슨 공간이냐고 물어왔다.

내가 서툰 영어로 왕의 부인과 어머니가 생활하던 건물의 뒤뜰 정원이라고 알려주면서 그 소감을 물었더니 아주 곱게 늙어 교양이 넘쳐 보이는 그 서양 여인은 내게 반어법으로 되묻는 것이었다.

“당신은 파라다이스라는 단어를 아십니까?”

(Do you know the word paradise?"

옳거니! 왕궁이란 당시인들이 생각한 이상적인 건축이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사람들이 건축적으로 구현한 파라다이스가 경복궁인 것이다.

실제로 경복궁에는 조선시대의 건축적 이상이 곳곳에 구현되어 있다.

 

 

전 문화재청장 유 홍 준 씨의 <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6>에서 발췌함.

댓글목록

설용화님의 댓글

설용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제가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에서 읽은 내용과 많이 비슷하다고 하며 읽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다 보니...^^

자주 올려주세요!

꼬레아님의 댓글

no_profile 꼬레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갑자기 문화유산답사기를 읽어 보고 싶어집니다.
이런 명쾌한 차이점을 알고 나니 자랑스런 우리 문화에 새삼 감동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원순임씨가 읽어 주는 우리문화유산답사기] 코너를 개설하여 주십시요.
감사합니다. ^^

박다리님의 댓글

no_profile 박다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자금성에 비하면 경복궁은 뒷간밖에 안된다."...... 정말 기분나쁜 몰지각한 말이로군요. 전 이런말을 들어본적이 없지만...........
이런 단순 비교 자체가 몰지각한 자기비하 이겠지요.  마치 중국은 땅이 크고 한국은 땅이 작다. 그러니까 중국이 좋다........... 뭐~ 이런 말인가요?
이씨조선때의 유학 영향으로 "대국 소국" 의 말처럼......
중국은 중국이고 한국은 한국인것처럼 중국의 건물은 중국대로의 장대함이 있고 한국의 문화재는 한국대로 자연과의 조화로움이 있는것이 아닐까요?
따라서 중국의 문화재를  보면 장대함을 보고 한국의 문화재를 보면 아름다움을 보게 되더군요.
"우리나라" 를 "저희나라"라고 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의 사람들을 보는것 같군요.
"내것" 의 아름다움을 바로 보는 그런 눈이 아쉽습니다.  우리 "야생화"의 아름다움을 찼는 야사모도 마찬가지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삼백초꽃님의 댓글

no_profile 삼백초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꼬레아님의 의견에 동감 합니다....
좋은 글 감사히 읽고갑니다....
남의나라것 과 비교하는 정신상태가 씁쓸 하군요....

우구리님의 댓글

no_profile 우구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저도 자금성 구경 갔다가...시껍했다 아입니까...
완죤히 밀려 댕기는 이상한 흐름을 따라가는 기분???
젤로 끄트머리에 호수를 맹글기 위해 판 흙으로다가 언덕인지..구릉인지 모를것으로 했다고 하더군여..
그 회백색의 쓸쓸한 분위기란....쩝...

지강님의 댓글

지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 존경 받아야 할 유홍준씨가 늘 선거때만 되면 ,  정치색을 드러내는 바람에 , 실망을 많이 했지요.
경복궁의 유구한 의미를 잘 읽었습니다. 감사 드려요.

킹스밸리님의 댓글

no_profile 킹스밸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번 정모 때 잠깐 들렀던 소쇄원에서 '어울림의 미학'이란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동아시아의 한국, 중국, 일본의 정원도 각각 나름대로의 특색이 있는데, 서양에서는 gardening 하면 일본식이 표준 처럼 인식이 되는 것이 참 아쉬운 부분이더군요.
'자연과 하나되는 무엇'이란 시각에서 보면 한국이 단연 최고죠!!!

ziwei님의 댓글

no_profile ziwei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베이징에서 여러해를 살며 아마 10여 차례 이상 자금성을 계절마다 들른 적이 있고 서울에 돌아와 우리 궁궐도 다녀보았습니다.
위 글처럼 우리의 궁궐건축의 아름다움과 차경의 미학을 새삼 느낍니다. (개인적으론 특히 창덕궁의 가을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자금성도 그 규모 뿐만 아니라 건축양식도 알고 보면 아름답습니다. (황제의 내성에 가면 여전히 뜰과 정자, 괴석들이 어우러진 원림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이화원도 그렇구요)
자금성은 중화론의 시각에서 세계의 센터로 설계건축되었으며, 사합원의 건축양식이 확장되어있는, 그야말로 담장으로 둘러싸인 성이면서 집입니다.
너무 우리 것의 가치에만 매이는 것 역시 사실 자국 중심주의입니다. 아름다움도 보는 눈에 따라 다 다릅니다.
모두 그 나라의 역사, 풍토 그리고 국가규모에 따라 발전하고 이루어지게 마련입니다.  베이징 사람들이 사는 사합원에 가면 자그만 뜰도 정겹습니다.
유홍준의 글은 반만 받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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